【‘ᄃᆞᆯᄏᆞᆷ 쌉쌀’ 서귀포시조시인협회와 함께하는 내 마음의 詩 - 3】 서정춘 '달·귤·서귀포'
2024-06-24 강영란 / 시인
달·귤·서귀포
서정춘
서귀포의 밤입니다
여기 저기
귤 나뭇가지에
보름달이 노랗게 알을 슬어 놓았습니다
거룩한 밤, 여기에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령 그렇다 거룩하다는건
크리스마스 이브날 아침 책상 서랍 속에 몰래 넣어져 있던 그림 엽서 속 전나무 맨 꼭대기 별이거나 가늘한 불빛 아래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소녀의 깊고 흰 목덜미 같은 것
거기에 거룩은 얹혀져 고요한 밤이 출렁이는 것이다
달이 아름답기로는 이곳만한 곳이 또 없으니
서귀포의 밤은 매일이 흥성스럽다
카노푸스가 뜨는 밤이 그렇고
외돌개 철썩이는 파도소리 청명한 밤이 그렇고
여름밤 주낙배들의 집어등 불빛이 그렇다
그래서 서귀포의 밤은 갯내음이 나고 별내음이 난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
어느 하루의 삶이 거룩하지 않은 날 있으리
보름달처럼 둥싯한 주황의 귤 열매들이 나무마다 주렁하면
이 또한 거룩한 일이니 그런 밤이라면 왜 두손 모으고 기도하고 싶어지지 않으랴
이곳이 서귀포인데
강영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