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귀포의 눈썹
이승은
바다에도 길은 있다, 물거품이 놓치는 길
마라도 발치쯤서 앞섶 다시 여미고
뒤채는 파도길 따라 새경 받으러 오는 봄
어멍도 아방도 없는 애기업게 홀로 남아
배 떠난 곳 바라보다 할 수 없이 꽃이 된 꽃
햇귀에 새눈 비비며 백년초가 갸웃댄다
가파도 등에 업힌 맨발의 봄도 있다
쩌르르 차오르는 젖줄을 부여잡은 채
보채다 보채다 못해 속 품 열어 보인다
헤일수록 헛된 꿈은 난바다에 묻어두고
문지방 넘어오는 정이월 새 날빛이여
서귀포 눈썹에 얹힌 섶섬 문섬 범섬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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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겨울은 자동차 바퀴를 둘러싸고 있는 곳에 고드름이 보였다. 점점 겨울 깊숙한 곳으로 갈수록 어깨를 움츠리며 한껏 힘을 주었던 날갯죽지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나마 아직 덜 언 입으로 호호, 불며 몸 구석구석에 입김을 불어 넣어 주었다. 새봄이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봄이 오고 있었다. 물거품이 놓치는 길 따라 겨울 같은 사연을 들으며 봄은 오고 있었다.
버리지 못한 헛된 꿈이 봄이 오는 길목을 막아버렸던 걸까. 그럼에도 겨울은 무거운 짐을 지고 어디론가 떠나고 그 자리에는 화사한 봄이 살포시 앉았다. 문지방 넘어선 새 날빛은 서귀포 눈썹에 사르르 얹히고.
따뜻하다, 이 봄이. (윤행순 시조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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