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가마터 오승철 그렇게 팔자 센 땅그 흙으로 너를 빚어이대로 굳으리라, 금 가면 금이 간대로길 하나 돌려세우고모슬포로가는길 ----------------------------------------------------------- 봄날이 왔다팔자 센 땅의 흙을 빚어 길 하나 돌려세운다육지에 번진 화마,모슬포 아궁이 깊숙이 ......불꽃이 핏줄처럼 퍼져 나가 금이 가면 금이 간 대로올레길돌담 귀퉁이 그렇게 나는 서 있다

가파도 청보리밭 박옥위 연두 빛 머리카락 날리며 돌아오는볼우물 부비고 싶은 오월의 언덕이여어멍*의 시린 뒤태가 끌고 오는 바람소리어느 녘 바람결이 이토록 달디 단가바람도 못다 불고 휘어져 날아가는가파도 청보리밭에 살랑팔앙 숨비소리 * 어머니의 제주 방언 천지가 초록으로 물드는 가파도바람을 가르며오월의 언덕을 넘는짐 진 어머니,바람을 넘어야 하는 계절이 어찌 오월뿐이랴!사계절이 다 바람인데.오며 가며 언뜻언뜻 보았던 청보리밭그 흔한 ‘쉼’도 호사라며…마음 시리게 하는 바람도오늘만큼은 휘어지는구나. 윤행순(시조시인‧수필가)

봄, 그렇게 오인순 나뭇잎 사이로 바람이 불어옵니다. 서귀포는 내게 바람입니다. 나를 설레게 하고, 힘들 때 친구처럼 나를 위로해주고 쓰다듬는 봄바람입니다. 새연교, 천지연, 소라의 성, 이중섭거리 모두 그렇게 봄바람입니다. 미적이면서 세련되고 유혹적입니다. 호젓한 영혼의 도시, 서귀포는 봄입니다. 작품평서귀포는 봄의 연緣이다가선, 가장자리..가장자리를 묶고 꾸미고 그렇게 시작되는게 서귀포의 봄이다고요하고 고요해서 본래 이러했었나 싶다가도 조잘조잘 햇살아래 꽃들을 활짝 펼쳐보이는곳어느 거리에서 봄바람이 뺨에 느껴지면 “네가 오나 봄

우도 봄바다 윤행순 우도 봄 바다가 윤슬로 울 때 있다단 한 번 본 적 없는상군해녀 내 고모육지로 물질을 가도 숨비소리 남아 있다 한반도 해안선 따라다닥다닥 붙은 해녀저승에서 벌어서 이승에서 쓴다는그렇게 댓마지기 땅 넘실넘실 우도땅콩 원정물질 끝내고 언제쯤 돌아오려나오늘은 일곱물이라 바릇잡이 좋은 날물결이 돌아든 섬에고모님 불러본다 ----------------------------------------------------------------------------- 테왁 하나 둘러메고 바당물질로 온 식구를 먹여 살렸던 제주의 해

정방폭포에서 소년이 본 것은 염창권 백록을필두로한분화구의화염속에골짜기들이연달아서새로길을냈더니산굽을마구돌아든물줄기가쏟아지며 껑껑,놀던산꿩들이달아난뒤에야쭉째진비탈위를올라탔다굴러들면서침묵을건너지르는장정들의함성으로 장작패듯빠개놓은너즐너즐한벼랑가에천둥치듯달려온싱싱한물어깨들이몸국을확엎질러버린그첫날의햇비린,물! -------------------------------------------------------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큰 대상 앞에서는 누구나 다 아이가 된다 했던가. 일필휘지, 분명 소년이 아닌데 소년의 눈으로. 돌아들다 푸더지고

싱그러운 물 언덕을 찾아가다 오영호 누군들 버겁고 지친 삶이 없었겠냐만가파른 나무 계단 오르는 내 무릎이마음이 앞서 가는지오늘 따라 가볍다 나무와 나무 사이큰 것과 작은 것들짙푸른 생명의 숨결 합일의 공존인가울창한 삼나무 숲 그늘에너그러운 6월의 햇살 하늘이 빚은 큰 대접에 꽃꽃이가 한창이다무성한 수초 사이로 물뱀이 날아갈 듯영아리 람사르습지싱그러운 물 언덕 ----------------------------------------- 주말이다연두를 품은 영아리 언덕의 여정을 따라 한 계단 한 계단 오른다.“하늘이 빚은 큰 대접에 꽃꽃

서귀포의 눈썹 이승은 바다에도 길은 있다, 물거품이 놓치는 길마라도 발치쯤서 앞섶 다시 여미고뒤채는 파도길 따라 새경 받으러 오는 봄 어멍도 아방도 없는 애기업게 홀로 남아배 떠난 곳 바라보다 할 수 없이 꽃이 된 꽃햇귀에 새눈 비비며 백년초가 갸웃댄다 가파도 등에 업힌 맨발의 봄도 있다쩌르르 차오르는 젖줄을 부여잡은 채보채다 보채다 못해 속 품 열어 보인다 헤일수록 헛된 꿈은 난바다에 묻어두고문지방 넘어오는 정이월 새 날빛이여서귀포 눈썹에 얹힌 섶섬 문섬 범섬이여 -------------------------------------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한강 어느늦은 저녁 나는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그때 알았다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울 먹었다 -------------------------------------------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영원히 지나간 것과영원히 지나가버리는 것과아직 오지는 않았으나종국에는 영원히 지나가야버려야 할 것들이혼재된 세상미증유의 그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음에서일까커다란 상실감을 느끼면서도‘영원’이라는헤아릴 수 없는 그 세계를 향하여,

1월 매화 이옥자 눈은 안 오고비만 내리더니잠자던 매화 놀라 꽃 피운다 미쳐 대접할 채비 없이날만 보다가 우중매로처연히 차를 우린다 엄동설한 귀한매손님 모셔 차 한 잔은호사스러운 일 되어버렸나 빛깔과 향기로말 못하고꽃 지자 잎 피는 모습에그림자 산을 넘지 못한다는이치를 깨닫는다 시평 비가 스며드는 저녁입니다1월인가 했는데 어느새 다 가버리는 1월입니다이런저런 날을 보다 너무 늦게 당도해 버리는 일들이 있습니다바짝 우리 곁에 매화가 왔습니다너무 늦기 전에 , 다 가버리기 전에 그대에게 연락 한 번 하겠습니다매화가 매화여서 아름다운 날

두모악 도채비꼿 강영란 헛되이 꼿이나 피워 놓았습니다 어스름 너머 푸른 별이그대의 안부로 저물어 갑니다 기다리면 오지 않는 게 기다림일까요 꼿이나 몇 송이 피워 놓고그 저녁을 걸으면기다림은 내 심장의 빛깔이 되어 갑니다 두모악이라 했습니다 그대의 영혼이그곳을 넘어갈 때미처 못 따라간 별 하나가산막 둘러 고즈넉이 핍니다 ........................................................................................................................

서귀포 다녀오는 길 김미영 갈 때는 초록초록 올 때는 가슬가슬한라산 골짝골짝 훑고 가는 저 단풍그렇게 사랑했다고 고백하진 않겠다 -------------------------------------------- 관계가 깊어 가면 갈수록 말수가 줄어든다는 말이 있습지요. ‘초록초록 가슬가슬…’ 거듭되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 그와는 반대로 차곡차곡 고요히 저 홀로 깊어가야만 하는. 해서, 그 어떤 곳도 아닌 ‘서귀포 다녀오는 길’의 저 단풍은 저리도 붉디 붉는 게 아니겠는지요. 피면 지고 뜨면 저무는… 그 이치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벌통생각 10 강현수 아버지는 언제나 섬 하나 품으셨다바람도 울고 가는 섬 하나를 품으셨다누군가 기다리면서월동하는 섬이 있다 대답하라 10년째 숨어버린 나의 별아아버지 등짝 같은 삼매봉 남쪽 기슭오늘 밤 봉침을 꽂듯내 눈에 와 박히는 별아 ----------------------------------------- 어른이 되고서야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소용돌이 칩니다.이제와 그렇습니다.아버지가 품은 섬을 사랑합니다.이미순(시조시인)

▲ 큰엉＊ 앞에서 홍경희 어느 아비인들 구멍 하나 없으랴바람이 잔잔해도 파도치는 시퍼런 생쇠울음 숨죽여 울던 사연들이 없으랴 가물거리는 수평선 침몰될 궁지에도당당히 간절하게 육박전으로 맞서다가심지 속 뼈대를 꺼내 이판사판 세운 절벽 큰엉에 박아 놓았나, 피륙으로 펼쳐놓았나스스로 생을 삼킨 심연 깊은 몸뚱이들이죄 없이 파도칠 때마다 먹빛으로 멍이 든다 흩뿌리는 빗속에서 바닷바람 맞비비다불현듯 염분에도 삭이지 못한 고통처럼아버지, 더 절절해진 기억들이 저민다· ＊서귀포시 남원소재 2km의 해안 절벽 누구에겐들 구멍 하나 없으랴만가고 또

먼나무 김성진 가까이 있어도먼 나무멀리 있어도 먼나무 붉게 지락지락* 열린 열매에마음을 주던 그대 바다 건너에 살아이곳에서 머언 오랫동안 남았던 기억 달 기울 듯 지고눈물 몇 방울 자국만 남아간간이 불러보는 이름 멀리 있어도 먼나무가까이 있어도먼 나무 *지락지락: 열매가 많이 달린 모양을 의미하는 제주어 먼 나무는 이름이 너무 멀어서 애절하다지락지락 달린 열매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떻게 그 ‘먼‘을 견뎌 내고 있는지 보이는 듯 하다바람 섞여 흰 눈 날리는 저녁들은 말없이 캄캄을 건너가고 너무 많은 종류의 ’먼‘들은 또 각자의

서귀포 양시연 가을이면 가겠네 풀내도 시들 즈음섬 따라 오름 따라 서귀포로 가겠네칠십리 갈매기마냥 꺼룩 울고 가겠네 어머니 젖무덤처럼 흔적이 된 대륙의 꿈백록담 돌매화도 팔랑팔랑 산굴뚝나비도빙하기 그 고향으로 돌아갈 꿈을 꾸네 홍해를 갈랐다지그 사내 그 지팡이로한라산도 그렇게 그 누가 갈랐을까한 생애 못 간 길 같은 푹 패어진 산벌른내 백록담이 ‘맏’이라면, 쇠소깍은 ‘깍’이겠네맏과 깍 ⃰ 그 사이에 칠십리 길이 있네가겠네, 돈내코 건너 효돈천 쇠소깍으로 * ‘끝 또는 꼴찌’의 제주어 --------------------------

고추잠자리 윤행순 앉아난 방석에 앉아라, 앉아난 방석에 앉아라봄가을 인사철이면 빙빙 도는 한집 살림제주섬 한 바퀴 돌아 어느 마을 또 갈까 행원에서 성산포 모슬포 중문까지아버지 직장 따라 학교도 따라 간다30년 말똥모자에 말똥냄새 묻어난다 여기저기 찍히는 동창회 문자메시지내 모교는 어딘지 침 한 번 튕겨본다올해는 앉아난 방석 외려 한번 뜨고 싶다 ---------------------------------------------- 어디 고추잠자리 만이랴. 멀게는 우주, 가까이로는 우리가 사는 이 섬 제주까지. 아버지 직장 따라 덩달아

위미리 동백 오승철 간밤에 동백 지듯 섬 몇 개 내린 바다인생은 일사부재리 고향에는 왜 왔냐며한때의 선거판처럼 낯붉히는 동백숲 ----------------------------------------------------------------------- 지금쯤 피어 있는 위미의 동백고향 떠난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바다는 여전히 푸르니떨어진 위미 동백에게 묻는다.행복하니?행복한가?“더 묻지마라 그 죄 내밀어보는 일사부재리” 이미순(시조시인)

쇠소깍 한희정 함부로 제 속을 보여주지 않던 그곳그냥 저냥 참아낼까, 울컥 뱉어낼까입술만 들썩이다가 속내 저만 깊었지 ………………………………………………………………………………… 쇠소깍이 젖었다.눈물인 듯 내 속도 젖는다.몸 흔들며 윗도리 단추 떨어지고헐렁헐렁 숨소리, 걸음조차 흐느적거릴 때내 속 봐 줄 사람이 있을까요. 빳빳한 세상,굴렁쇠처럼 휘어지면 될 일이라고 참다, 참다 저 속내들썩이다가 입 다무는. 윤행순(시조시인·수필가)

그리움 산억수 십 대 후반능력은커녕 멍청하고 가난한알퐁스도데 별 뜬 걸 보고나 오솔길 찾아 산을 헤매다할아비 된 지금도오늘하여사 서귀포를 둘러본다 감상평 히말라야에는 물소 암컷과 수컷 야크를 이종 교배시킨 좁교라는 가축이 있다한다안나푸르나 아랫마을에서 짐을 나르는 좁교소량의 먹이를 먹고 평생을 좁고 위험한 비탈길에서 일만 하다가 생을 마감하는 동물나는 시의 짐을 나르는 좁교이다아무리 몸부림치며 반항을 해도 등에 있는 짐을 떨어뜨리지 않는 운명그 짐 중에서도 가장 무거운건 그리움이다그리움은 해가 갈수록 대상들이 더해지면서 그 무게가

엉또 ⃰ 송인영 모름지기 남자는 헤프게 울지 않는 법일평생 그 말씀을 유언으로 삼았을까?아버진 가문 날 벼랑처럼그리 살다 가셨다 울고 싶은 이 세상 끝까지 부둥켜안고절대로 울지 않는 아버지가 되기 위해남몰래 밤하늘 바라보며외려 별을 위로하며 산다는 건 슬픔도 가슴에 음각하는 일아버지가 남겨놓은 아버지의 고집같이함부로 눈물 보일 수 없어나는 울음을 삼킨다 ⭑ 엉또 폭포 ---------------------------------------------------------------------- 아주 큰 비가 내린 후에 천둥 치는 소리